알딸딸 알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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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7.

    by. tispy

    목차

      전통 위에 세워진 가장 현대적인 실험

      위스키의 세계는 종종 ‘역사’와 ‘전통’이라는 단어로 포장됩니다. 실제로도 18세기, 19세기에 설립된 증류소들이 여전히 시장을 장악하고 있죠. 그런데 이 틈에서 한 증류소가 용감하게 등장했습니다. 2005년,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에 문을 연 킬호만(Kilchoman)은 그야말로 반칙 같은 신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젊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킬호만은 전통적인 방식, 심지어 일부에서는 잊혀가던 농장형 증류 철학까지 복원하며, 아일라 위스키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습니다.

      과연 킬호만은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세계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았을까요? 그 비밀을 역사, 철학, 제품, 그리고 맛에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킬호만 증류소의 역사 – ‘농장에서 병까지’의 부활

      킬호만은 아일라 서쪽 해안에 위치한 로크 긴네르(Loch Gorm)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증류소는 약 124년 만에 아일라 섬에 새로 문을 연 첫 증류소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대부분 대형 증류소들이 수입된 보리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킬호만은 ‘Farm Distillery’를 표방하며 농장 내에서 보리를 직접 재배하고 몰팅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전통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닌, 100여 년 전 위스키 산업이 시작되던 시절의 순환 시스템을 복원한 것입니다. 증류소 부지 내에는 몰팅 플로어, 피트 오븐, 증류기, 창고, 병입 설비까지 전 과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Field to Bottle’이라는 철학이 말뿐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단 1마일 반경 안에서 이루어낸다는 점은 킬호만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완전 자급식 위스키 생산 구조를 가진 증류소는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점은 킬호만이 단순히 ‘젊은 증류소’가 아닌, ‘완성된 독립형 증류소’로 불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킬호만의 창립자 앤서니 윌스(Anthony Wills)는 “작지만 정직한 증류소”를 목표로 삼았고, 아들들과 함께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현재까지도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비전은 단순한 제품 생산을 넘어, 아일라 섬 자체에 대한 헌정처럼 느껴집니다. 이 섬의 토양에서 태어난 보리를 피트로 말리고, 바닷바람이 스치는 창고에서 숙성시켜 병에 담기까지, 킬호만은 ‘장소의 에너지’를 위스키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킬호만은 짧은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해왔습니다. 첫 제품 출시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Loch Gorm’, ‘Sanaig’ 등 다양한 캐스크 피니시 제품군을 선보였고, 이는 기존의 아일라 증류소들과는 전혀 다른 소비자 경험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킬호만의 역사는 ‘급속 성장’이 아닌 ‘깊이 있는 확장’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킬호만 위스키의 특징 – 가장 순수한 피트의 해석

      킬호만 위스키는 전통 아일라 스타일의 피트향을 기본으로 하되, 이를 ‘더 섬세하고 젊게’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평균 피트 수치(ppm)는 약 50으로 강한 편에 속하지만, 향에서 느껴지는 표현은 꽤 다채롭고 세련되어 있습니다.

      킬호만의 피트향은 단순한 연기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갓 꺾은 풀 내음, 구운 견과류의 고소함, 그리고 먼 바다에서 불어온 듯한 미세한 소금기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입안에 머금으면 처음에는 강렬한 스모크가 터지지만, 이내 부드럽고 달콤한 버번 캐스크의 바닐라 노트가 뒤따라 나옵니다. 마치 불 위에 올린 꿀 바른 토스트처럼, 뜨거움과 달콤함이 교차하죠.

      • : 신선한 풀 내음, 스모크 베이컨, 레몬필, 옅은 바닐라, 가죽 향
      • : 스파이시한 피트, 감초, 약간의 염분, 구운 오크, 꿀
      • 피니시: 드라이하고 깔끔하며, 스모키함과 함께 시트러스한 산뜻함이 남음

      킬호만은 숙성에 있어 버번 캐스크와 셰리 캐스크를 적극 활용하며, 숙성 기간은 비교적 짧지만 고밀도 풍미를 자랑합니다. ‘젊지만 결코 얕지 않은’ 위스키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죠. 특히 실험적인 포트, 마데이라, 사과 브랜디 캐스크 등의 도입은 킬호만이 보수적인 스코틀랜드 위스키계에서 얼마나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킬호만은 몰트의 출처에 따라 ‘100% Islay’ 시리즈와 외부 몰트를 사용한 ‘Core Range’를 구분하여 출시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며, 킬호만의 투명한 생산 철학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100% Islay’는 특히 토양의 특성과 바닷바람이 고스란히 반영된 몰트를 사용해 킬호만 특유의 테루아르(terroir)를 강하게 표현합니다.

      킬호만은 결국, 강렬함을 정제된 방식으로 재해석한 브랜드입니다. 피트 위스키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 젊은 감성과 현대적 감각을 담아낸 — 그래서 더욱 주목할 만한 이름입니다.

       

      3. 킬호만 인기 제품 라인업 – 맛, 가격, 페어링까지

      🥃 Kilchoman Machir Bay

      • 도수: 46%
      • 특징: 대표 제품. 버번 캐스크 숙성의 깔끔함과 피트의 조화
      • 가격: 약 90,000 ~ 110,000원
      • 페어링: 훈제 연어, 시트러스 드레싱 샐러드, 민트 초콜릿

      🥃 Kilchoman Sanaig

      • 도수: 46%
      • 특징: 셰리 캐스크의 달콤함과 피트의 스모키함이 균형
      • 가격: 약 110,000 ~ 130,000원
      • 페어링: 블루치즈, 초콜릿 무스, 향신료 닭고기 요리

      🥃 Kilchoman Loch Gorm

      • 도수: 46%
      • 특징: 전량 셰리 캐스크 숙성. 무화과, 가죽, 깊은 피트
      • 가격: 약 140,000 ~ 170,000원
      • 페어링: 바비큐 갈비, 트러플 감자, 체다 치즈

      🥃 Kilchoman 100% Islay

      • 도수: 50%
      • 특징: 농장에서 보리 재배부터 병입까지 아일라에서 완성. 퓨어한 맛
      • 가격: 약 120,000 ~ 150,000원
      • 페어링: 오트밀 크래커, 허브 구운 돼지고기, 고트치즈

      이 외에도 한정판 캐스크 시리즈와 다양한 익스페리멘탈 시리즈가 정기적으로 출시되며,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킬호만은 2020년 기준 연간 약 35만 리터를 생산하며, 비교적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세계 주요 시장에 활발히 수출되고 있습니다.

       

      4. 킬호만 증류소 투어 – 손으로 만나는 증류의 모든 것

      킬호만 증류소는 ‘직접 경험’에 무게를 둔 운영 방침으로, 방문자에게 단순한 관람 이상의 체험을 제공합니다. 투어 참가자는 실제 몰팅 바닥에서 보리를 뒤집어보고, 피트 훈연 과정에서 나오는 향을 맡아보며, 막 증류된 스피릿을 시음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됩니다.

      • 투어 종류: 클래식 투어, 100% Islay 체험, 프라이빗 캐스크 시음
      • 기념품: 킬호만 전용 테이스팅 잔, 팜 보리 한 줌, 익스클루시브 미니어처
      • 이동 팁: 포트 나하벤(Portnahaven)에서 차량으로 약 25분 거리

      자연에 둘러싸인 증류소 환경도 일품입니다. 잔잔한 초원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증류소 외관은, ‘아일라의 현대적 전통’을 시각적으로 상징합니다.

      스코틀랜드 아일라섬 킬호만 증류소 위스키

       

      전통을 계승한 가장 젊은 실험

      킬호만은 증류소 중에서도 보기 드문 실험 정신과 깊은 존중을 동시에 지닌 브랜드입니다. 비록 역사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기술, 그리고 사람의 손끝은 누구보다 진지합니다. 피트 위스키의 강렬함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해석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킬호만은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찾고 있던 아일라의 새로운 얼굴, 그 이름은 킬호만입니다.

      “어떤 위스키는 시간을 담고 있고, 어떤 위스키는 미래를 담고 있다. 킬호만은 그 둘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