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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향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한 번쯤 이 두 브랜드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 바로 라가불린(Lagavulin)과 아드벡(Ardbeg). 둘 다 스코틀랜드 아일라(Islay) 섬 출신의 대표적인 피트 위스키로, 강렬한 스모키함과 요오드향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죠.
아일라 위스키는 대개 특유의 피트향, 짭조름한 바다 내음, 그리고 약간의 소독약 냄새로 표현됩니다. 이런 향에 처음 접한 사람은 종종 "이걸 왜 좋아하지?"라고 의문을 갖지만, 한 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라가불린과 아드벡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서, 진정한 피트 위스키의 '왕좌'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정말 둘 중 하나가 최강일까요? 이 글에서는 라가불린과 아드벡을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해보고, 숨겨진 진짜 최강자 브룩라디의 옥토모어(Octomore)까지 소개해 보겠습니다.
라가불린 – 묵직하고 깊은 피트의 품격
라가불린은 아일라 남부에 위치한 증류소로, 그 대표작인 라가불린 16년은 전 세계 위스키 팬들의 레퍼런스처럼 여겨집니다. 1816년 설립 이후, 특유의 깊고 중후한 스모키함으로 클래식한 피트 위스키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죠.
- 향과 맛: 무겁고 묵직한 스모키향. 피트는 강하지만 과하지 않으며, 말린 과일과 오크, 살짝 짠 바다 내음이 어우러집니다. 끝 맛에는 단단한 탄내와 초콜릿 같은 여운이 남습니다.
- 입문자 적응도: 비교적 부드러운 편. 피트향이 있으나 균형감이 있어 입문자에게도 추천됨.
- 요오드 느낌: 의료용 알코올보다는 바다 풍미에 가까운 염기성 향이 은은하게 퍼짐
- ppm (Phenol Parts per Million): 공식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략 35-40ppm 추정
라가불린은 거친 향보다는 절제된 무게감과 여운이 돋보이는 스타일입니다. 불에 탄 숯과 같은 아로마 속에 고전적인 풍미가 녹아있죠. 부드럽지만 흔들림 없는 그 풍미는 '중후한 매력'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아드벡 – 폭발적인 스모키함과 도전적인 캐릭터
반면 아드벡은 피트향의 공격성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입니다. 아드벡 10년은 그 입구이자 대표 제품이죠. 1815년 설립된 이 증류소는 전통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실험적인 브랜드입니다.
- 향과 맛: 불에 탄 타이어, 요오드, 고무, 해초. 피트향이 전면에 배치되며, 톡 쏘는 페놀향이 강함. 혀 끝을 자극하는 알싸함과 함께 짭짤하고 기름진 뒷맛이 남습니다.
- 입문자 적응도: 호불호가 강하게 갈림. '도전과제' 같은 존재지만, 좋아지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 요오드 느낌: 라가불린보다 훨씬 진하고 선명함. 병원 소독약 느낌에 가까움
- ppm: 약 55ppm 수준. 라가불린보다 확실히 높음
아드벡은 피트를 '예술'이 아닌 '무기'처럼 사용합니다. 한 모금으로 뇌리에 각인되는 강렬함, 바로 이 점이 팬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일부 한정판 제품은 심지어 60~100ppm을 넘기도 하며, 테크노 음악 같은 강렬한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진짜 피트 최강자는 따로 있다 – 옥토모어
많은 사람들이 라가불린과 아드벡을 비교하며 어느 쪽이 더 강한지 논쟁하지만, 사실 피트의 절대 강자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같은 아일라 출신인 브룩라디(Bruichladdich) 증류소에서 만든 옥토모어(Octomore)입니다.
옥토모어는 이름부터 강렬합니다. 바닷가 절벽 위의 작은 농장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극한의 피트 실험'을 슬로건처럼 내세운 라인입니다. 그 어떤 위스키도 따라올 수 없는 수치의 ppm을 기록하죠.
- 옥토모어의 정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피트 레벨(ppm)을 자랑하는 위스키 라인
- 대표 제품 예시:
- Octomore 10.1: 107ppm
- Octomore 11.3: 194ppm
- Octomore 08.3: 무려 309ppm에 달함 (실제 마시는 피트감과는 또 다름)
- 맛과 향: 피트는 강렬하지만, 오히려 더 깨끗하고 정제된 느낌. 미묘한 단맛과 함께 부드럽게 펼쳐짐
아이러니하게도 옥토모어는 가장 피트 레벨이 높지만, 라가불린이나 아드벡보다 더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유는 증류 및 숙성의 기술력 덕분이죠. 이는 단순한 페놀 수치의 싸움이 아니라, 향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한 장인정신의 결과입니다.
ppm이 전부는 아니다 – 피트의 깊이 이해하기
위스키에서 말하는 ppm은 보통 맥아를 건조할 때 흡수된 페놀 성분의 수치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피트향을 만들어내는 물질이 어느 정도까지 원재료에 스며들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ppm 수치가 높다고 반드시 향이 더 강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 병에서 맡고 마셨을 때의 향과 맛은 그보다 훨씬 많은 요소에 좌우됩니다.
예를 들어, 옥토모어는 200ppm이 넘는 수치를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라가불린처럼 40ppm 내외인 위스키보다 덜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는 피트의 종류와 연소 방식, 증류 시의 손실률, 숙성 환경 등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 피트의 성질: 단순한 탄 냄새만 있는 게 아닙니다. 흙, 풀, 요오드, 해조류, 타이어, 훈제 고기, 젖은 돌 등 복합적인 향으로 나타납니다. 마시는 이의 체온, 물의 양, 글라스의 형태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 숙성 기간, 배럴, 지역 기후 등 다양한 요소가 실제 향과 맛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일라의 해풍과 습도, 염분이 만들어내는 바다 내음은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무형의 개성입니다.
- 증류 기술: 피트향은 원액의 불순함과 직결되지 않도록 조율되어야 하며, 어떤 고도에서 몇 번 증류되는지, 어떤 형태의 증류기가 쓰였는지도 최종 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사람마다 향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 같은 위스키도 누군가에게는 약처럼, 누군가에게는 장작불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피트 위스키는 단순한 수치화가 불가능한 감각의 조합입니다.
즉, 피트 위스키는 숫자가 아니라 감각의 예술입니다. 더 많이 맛볼수록, 더 다양하게 느끼게 됩니다.
당신에게 맞는 피트 위스키는?
- 부드럽고 클래식한 피트를 원한다면 라가불린
- 강렬하고 실험적인 향을 원한다면 아드벡
- 진짜 피트의 끝을 보고 싶다면 옥토모어
결국 어떤 위스키가 '최강'인지는 ppm 수치가 아니라, 마시는 사람의 취향과 감성이 결정합니다. 정답은 없고, 취향만 존재하죠.
위스키는 숫자가 아닌 이야기입니다. 피트 위스키의 세계에 들어선 당신이라면, 이제 어떤 병을 골라도 즐길 준비가 된 거예요.
당신은 어떤 피트를 선호하시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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