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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22.

    by. tispy

    목차

      불법에서 시작된 술, 위스키

      오늘날엔 바에서, 백화점에서, 혹은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위스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위스키 한 병은,
      불과 300년 전만 해도 금지된 밀주, 세금 회피의 상징, 그리고 정부와 농민 사이의 전쟁 도구였다.
      이 글에서는 위스키가 어떻게 불법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인 명주로 성장했는지를
      시대 순으로 정리하면서, 그 과정에서 위스키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풀어본다.

      위스키의 흥미로운 역사 – 처음엔 불법이었다고

      1. 17~18세기, 불법 증류의 시작 – 세금이 만든 범죄자들

      위스키가 공식적으로 불법이 된 것은 1644년 스코틀랜드에서 증류주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면서 시작된다.
      잉글랜드 왕실은 전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술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농민과 소규모 양조업자들은 정부의 허가 없이 몰래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한 밀주 범죄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위스키 증류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농작물(보리)의 보존 방식이자
      겨울 생존을 위한 필수 자원이었다.
      고지대 주민들에게 위스키는 ‘현금보다 더 가치 있는 교환 수단’으로 통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영국 정부와 지역 공동체 사이의 문화적 충돌로 번져갔다.

      이 시기의 위스키는 대부분 작은 농가의 부엌에서 은밀하게 생산되었고,
      세금을 피하기 위해 밤에만 불을 지펴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 위스키들은 "문라이트(Moonlight)",
      나아가 오늘날 **"문샤인(Moonshine)"**이라는 이름으로 전설화되었다.

       

      2. 밀주 시대의 전성기 – 스모글러와 숨겨진 계곡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위스키 밀주가 거의 국민적 산업 수준으로 성장한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스페이사이드(Speyside), 하이랜드(Highlands), 아일라(Islay) 지역에서는
      ‘스모글러(Smuggler)’들이 위스키를 마치 금광처럼 숨겨 만들었다.

      스모글러들은 계곡 깊숙이 증류기를 숨기고,
      세무 공무원이 나타나면 증류기를 해체해 물속에 숨기거나, 이탄더미 아래에 파묻었다.
      또한 말의 발굽을 거꾸로 끼워 추적을 피하는 등의 기발한 방식으로 도주하며
      로빈후드 같은 전설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위스키는 지금처럼 숙성되지 않았고,
      알코올 도수도 일정하지 않아 매우 거칠고 휘발성 강한 풍미를 가졌다.
      그러나 자연적인 증류, 순수한 몰트, 이탄 훈연 등 현재 고급 싱글 몰트에서 선호하는 기술들이
      이 밀주 시대에 이미 탄생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 정부의 타협 – 합법화와 위스키 산업의 시작

      정부는 밀주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1823년 ‘Excise Act(주류세법 개정)’을 통해 새로운 합법화 모델을 도입했다.
      이 법은 일정 요건을 갖춘 소규모 증류소에게 세금 면제와 합법 증류 허가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다수의 밀주 생산자들이 합법 증류소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증류소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운영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글렌리벳(Glenlivet)**은 이 법의 수혜자 중 하나다.
      글렌리벳의 창립자인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당시 최초의 합법 면허를 취득한 인물로,
      이후 싱글 몰트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로 불린다.

      합법화 이후 위스키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이후 철도망 확장, 병입 기술의 발전, 블렌디드 위스키의 대중화 등과 함께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4. 20세기 금주령과 위스키의 국제적 반전

      아이러니하게도 위스키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가장 큰 계기 중 하나는
      미국의 금주령(Prohibition, 1920~1933)이었다.
      이 시기 미국 내에서 알코올 판매가 전면 금지되면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산 위스키는 의약품, 밀수품, 밀매용 상품으로 엄청난 수요를 얻게 된다.

      특히 캐나다 국경을 통해 반입된 스카치 위스키는 미국 마피아와 갱단의 자금줄이 되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금주령 해제 선언 이후에는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는 고급 알코올"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며
      위스키는 프리미엄 주류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이 시기를 전후해 스코틀랜드에서는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조니워커, 듀어스 등)가
      세계적 인지도를 확보하게 되고,
      싱글 몰트 역시 글렌피딕, 맥캘란 등을 중심으로 점차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5. 현대의 위스키 – 장인의 부활과 전통의 재발견

      21세기 들어, 위스키는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간 듯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형 브랜드 중심의 대량 생산이 주류였던 1990~2000년대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소규모 증류소의 장인 정신, 지역의 떼루아, 전통 증류 방식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 노-필터(No Chill-Filtering) 제품
      • 내추럴 컬러(인공색소 미사용)
      • 싱글 캐스크(Single Cask) 한정판
      • 피트 레벨 강조, 저수확 고밀도 증류

      이런 키워드를 중심으로 위스키는 또 다른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위스키를 주제로 한 디스틸러리 투어, 테이스팅 클래스, 유튜브 채널, 위스키 바 문화 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위스키는 단지 마시는 술이 아닌 경험하고 수집하고 소통하는 술로 변모하고 있다.

       

      금지된 술에서 문화가 되기까지

      처음에는 세금을 피한 밤의 술이었고, 때로는 국가와 부딪히며 금지된 알코올로 불렸던 위스키.
      하지만 그 속에는 늘 사람들의 삶, 생존, 고집, 기술, 그리고 자존심이 담겨 있었다.
      위스키의 역사는 곧 사람들의 역사, 그리고 장인 정신의 역사다.

      불법이던 위스키가 오늘날 전 세계인이 향과 맛으로 소통하는 술이 되기까지,
      그 여정 속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길과 용기 있는 결정들이 있었다.
      이제 한 잔의 위스키를 마실 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음미해보자.
      그 술은 단지 술이 아니라, 시대를 증류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