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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몰트’의 성지, 스페이사이드를 아시나요?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애호가들이 가장 먼저 찾는 지역이 어디냐 묻는다면,
많은 이들은 주저 없이 스페이사이드(Speyside)라고 말할 것이다.
이 작은 지역은 전체 면적이 크지 않지만,
스코틀랜드 전체 증류소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밀집해 있다.
즉, ‘싱글몰트 천국’이라 불릴 만큼 많은 고급 위스키가 이곳에서 생산된다.달콤한 과일 향, 셰리 캐스크의 풍미, 섬세하고 우아한 텍스처.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는 입문자부터 전문가까지 모두가 사랑하는 스타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기원과 특징,
그리고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주요 증류소들과 그 대표 제품들을 소개해 본다.1.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시작 – 강과 셰리, 그리고 장인정신
스페이사이드(Speyside)의 위스키는 단순히 ‘지명’에서 유래한 스타일이 아니다.
그 시작은 수세기 전, 강과 사람, 그리고 유럽을 뒤흔든 와인의 여정에서 출발한다.먼저 스페이사이드를 관통하는 리버 스페이(River Spey)는 단순한 지리적 요소가 아닌 위스키의 생명선이라 불릴 만하다.
이 강은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긴 하천으로, 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는 안정된 수온 덕분에 연중 내내 위스키 생산에 필요한 깨끗하고 풍부한 물을 공급해준다.
특히 강 근처에 형성된 모래와 자갈층은 자연적인 여과 역할을 하며 물의 순도를 극대화해,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특유의 부드럽고 맑은 풍미에 기여한다.18세기 말~19세기 초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위스키 제조는 여전히 불법적 소규모 증류로 이루어졌고, 많은 증류사들이 험한 고지대에 숨어 위스키를 만들었다.
그러나 스페이사이드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고, 풍부한 물과 농작물(특히 보리)이 있어 자연스럽게 합법화 이후 증류소가 집중되는 지역으로 발전했다.
1823년 영국 정부가 위스키 세금 정책을 완화하고 합법화를 촉진하면서, 스페이사이드는 ‘신생 합법 증류소’의 허브가 되기 시작했고, 글렌리벳(The Glenlivet)이 최초로 합법 면허를 취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하지만 스페이사이드가 ‘전 세계가 사랑하는 위스키’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조연이 있다. 바로 스페인 남부 헤레즈(Jerez) 지역에서 온 셰리 와인 캐스크다.
19세기 후반,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수입된 셰리 와인은 그 운송에 쓰였던 오크통(셰리 캐스크)을 빈 채로 되돌리지 않고 스코틀랜드에 남겨두곤 했다. 이 통을 재활용한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들은 셰리 캐스크 안에 위스키를 숙성시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생긴 말린 과일, 스파이스, 너티한 풍미는 기존 위스키와는 전혀 다른 우아함을 만들어냈다.결과적으로 셰리 캐스크의 도입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를 단지 ‘잘 만든 몰트’에서 벗어나, “달콤하고 섬세하며 기억에 남는 위스키”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당시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는 브랜디 수입이 급감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이 새롭고 풍부한 몰트는 ‘브랜디의 대체재’로 떠오르며 영국 귀족과 유럽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스페이사이드의 위스키는 그렇게 태어났다.
깨끗한 강물, 풍요로운 농지, 스페인의 셰리 와인, 그리고 위스키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사람들.
이 모든 요소가 만난 결과, 지금 우리는 스페이사이드라는 이름만으로도 ‘부드럽고 풍성한 위스키’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2.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특징 – 과일향, 셰리캐스크, 그리고 부드러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가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단지 생산량이나 브랜드 인지도 때문이 아니다.
스페이사이드만의 고유한 풍미와 스타일이 다른 어떤 지역의 위스키보다도 보편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향미 – 달콤한 과일에서 시나몬까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를 처음 접한 이들이 가장 먼저 감탄하는 것은 그 섬세한 향의 폭이다.
대표적으로 잘 익은 배, 사과, 복숭아, 꿀, 바닐라, 시나몬, 건포도 향이 조화를 이룬다.
이는 전통적으로 피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제조 방식 덕분이다.
피트의 강한 스모크 향이 억제되면서, 몰트와 캐스크에서 오는 천연 향미가 훨씬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다.예를 들어 글렌피딕 12년은 신선한 사과와 배 향, 바닐라 톤이 부드럽게 어우러지고,
아벨라워 A'bunadh는 셰리 캐스크의 풍미가 극대화되어 무화과, 체리, 다크 초콜릿과 같은 농축된 향미를 선사한다.이러한 스펙트럼은 초보자에게는 쉽게 접근 가능하면서도, 애호가들에게는 매력적인 ‘깊이’를 제공한다.
셰리 캐스크 – 단맛과 우아함의 핵심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또 하나의 핵심은 셰리 캐스크 숙성이다.
이 지역의 많은 증류소들이
스페인 헤레즈 지역에서 사용된 올로로소(Oloroso), 페드로 히메네스(PX)
등의 셰리 와인 캐스크를 재사용하여 위스키를 숙성시킨다.이 캐스크들은 오크의 타닌 성분뿐 아니라
셰리 와인의 잔향을 위스키에 입혀,
건포도, 브라운 슈거, 토피, 견과류, 가죽, 심지어 커피와 카카오 같은 복합적인 뉘앙스를 부여한다.
특히 맥캘란(Macallan)이나 글렌드로낙(GlenDronach) 같은 브랜드는 이 셰리 캐스크 스타일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셰리 폭탄(Sherry Bomb)”이라 불리는 카테고리를 형성할 정도다.이는 단순한 ‘숙성 방식’이 아니라 스페이사이드만의 감각적 정체성이자,
위스키 역사에서 셰리 캐스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코드이기도 하다.부드러움과 균형 – 입문자에게도, 애호가에게도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마지막 특징은 바로 부드러운 바디감과 균형 잡힌 구조다.
탄닌이 과하지 않고, 알코올의 날카로움이 초반부터 잘 다듬어져 있어
입에 머금었을 때 자극보다 ‘깊은 여운’이 먼저 다가오는 스타일이 많다.또한 대부분의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는
천천히 증류하며 불순물을 정제하고, 숙성 캐스크를 까다롭게 선별하기 때문에
첫 향부터 끝 맛까지 이어지는 일관성이 매우 우수하다.이러한 구조 덕분에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는 ‘위스키 입문자의 첫 선택’이 되기도 하며,
다년간 숙성된 빈티지의 경우에는 경험 많은 위스키 애호가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술이 된다.3.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증류소 – 작지만 강력한 위스키 밀집지
스페이사이드에는 공식적으로 약 50개 이상의 증류소가 밀집해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도이며,
각 증류소는 스타일과 생산 방식, 캐스크 사용법에 따라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켜왔다.
아래는 주요 증류소 8곳과 그 대표 제품들이다.1) 맥캘란 (Macallan)
- 특징: 셰리 캐스크 위스키의 대표주자
- 대표 위스키: Macallan Sherry Oak 12, Double Cask 18
- 설명: 농축된 과일, 시나몬, 초콜릿. 고급 셰리 오크 숙성의 정수
2) 글렌피딕 (Glenfiddich)
- 특징: 세계 판매 1위 싱글몰트
- 대표 위스키: Glenfiddich 12, 18, 21 Rum Cask
- 설명: 사과, 배, 오크, 바닐라. 부드럽고 깔끔한 구조
3) 글렌리벳 (The Glenlivet)
- 특징: 스페이사이드 최초의 합법 증류소
- 대표 위스키: Glenlivet 12, Founder's Reserve
- 설명: 달콤하고 가벼운 꿀 향, 산뜻한 과일 풍미
4) 아벨라워 (Aberlour)
- 특징: 셰리 캐스크의 깊은 맛과 강한 바디감
- 대표 위스키: Aberlour 12, A'bunadh
- 설명: 무화과, 체리, 스파이스의 진한 조화
5) 발베니 (Balvenie)
- 특징: 전통 몰팅 바닥 보유, 핸드메이드 철학
- 대표 위스키: Balvenie DoubleWood 12, Caribbean Cask 14
- 설명: 오크와 럼 캐스크의 조화, 섬세하면서 풍부한 풍미
6) 글렌드로낙 (GlenDronach)
- 특징: 셰리폭탄이라 불릴 만큼 강한 셰리 풍미
- 대표 위스키: GlenDronach 15 Revival
- 설명: 건포도, 초콜릿, 커피의 깊은 구조감
7) 크레이겔라키 (Craigellachie)
- 특징: 약간의 유황, 기름진 스타일
- 대표 위스키: Craigellachie 13
- 설명: 복합적이고 무게감 있는 몰트, ‘남성적인’ 위스키로 알려짐
8) 벤리악 (BenRiach)
- 특징: 피트/비피트 둘 다 생산, 다양한 캐스크 피니시
- 대표 위스키: BenRiach The Twelve, Smoky Ten
- 설명: 셰리, 포트, 럼 캐스크 피니시 등 실험적 스타일
4.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를 더 즐기는 방법 – 마시는 법부터 여행까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는 섬세한 향과 맛을 감상하는 술이다.
스트레이트로 음미하며, 필요 시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
향을 확장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셰리 캐스크 위스키는 다크 초콜릿, 견과류, 블루치즈와의 페어링도 뛰어나다.스페이사이드 지역은 위스키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코스다.
‘몰트 위스키 트레일(Malt Whisky Trail)’을 따라
맥캘란, 글렌리벳, 벤리악 등을 도보 또는 차량으로 여행할 수 있다.
마을 펍마다 지역 위스키를 다르게 서빙하며,
하루 3~4곳 정도의 증류소를 여유 있게 둘러보는 것이 추천된다.가장 많은 위스키가 모인 땅, 가장 사랑받는 스타일의 시작점
스페이사이드는 단지 위스키를 많이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싱글몰트’라는 문화 그 자체를 정의한 성지이자, 위스키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땅이다.
스모키한 위스키가 부담스러웠다면, 셰리향과 과일의 부드러운 조화를 느끼고 싶다면,
스페이사이드는 당신이 처음으로 탐험해야 할 지역이다.당신이 처음 마신 몰트가 스페이사이드였다면,
그건 단지 시작이 아니라, 이미 ‘좋은 선택’을 한 것이다.'위스키 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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